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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택시승차 거부를 당하는가? [택시기사 이선주의 세상사는 이야기-7]

즐거운 츄리닝 2010. 3. 24. 13:21

기사전송 2010-03-24 04:58    최종수정 2010-03-24 11:03

 

 

‘택시’와 ‘승차거부’. 너무나 많이 회자되고 있고 신문에도 종종 등장할만큼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택시 승차거부는 우리나라의 공교육 문제처럼 좀처럼 잘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현직 택시 운전자 입장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승차거부가 가장 심한 장소와 시간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강남역~신논현역~논현역 양방향 영등포역 근처 구로역 인천·수원방향 종로2가 양방향 신촌 외곽방향 등 대략 7~8곳입니다. 시간대는 금요일 밤 연휴가 이어지는 전날 밤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오후 11시30분~새벽 1시30분이 가장 심하고 새벽 3시까지 승차거부가 이어지기도 합니다. 특히 이번 주 25·26일처럼 매월 마지막 주의 목·금요일에 월급날이 겹치면 시내 주요 지역에는 거의 밤새 택시 승객이 넘칩니다. 때문에 일부 욕심많은 동료들의 승차거부, 호객행위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미 정해져 있는 시간과 장소에서 벌어지는 부당행위이기에 관련 공무원의 뜨거운 마음만 있으면 해결될 일인데 해결되지 않는 점이 저의 입장에서 보면 불가사의 합니다.


 

그럼 누구는 택시타고 가고 누구는 승차거부 당하고 하는 그 기준이 대체 뭘까요? 택시 운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은 일단 ‘일발장타(一發長打)’입니다. 예를 들어 사당에서 과천가자 하면 싫어하지만, 상계동에서 과천가자 하면 ‘칙사’대우를 받으며 목적지에 갈 수 있습니다. 또는 상계동에서 의정부가자 하면 싫어하지만, 사당에서 의정부 가자하면 좋아하는 식입니다. 택시기사 입장에서 제일 좋은 코스는 ‘손님이 있는 곳에서 타서 손님이 있는 곳에 내리는 경우’와 ‘짧은 시간에 멀리갈 수 있는 경우’입니다. 평소 경험에 의해 택시운전자들은 이러 상황에 대한 통계가 이미 머릿 속에 다 나와 있습니다. 때문에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인 강남~방배 강남~잠원 종각·을지로입구~필동 신촌~연남·연희·망원동 등은 극단적으로 싫어하기도 합니다. 물론 택시기사는 목적지 가리지 말고 손님 가리지 말고 모든 승객을 모셔야겠지만, 손님의 방향에 따라 수입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거리에 손님이 조금 많다 싶으면 좀 더 좋은 방향으로 가는 손님을 태우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승차거부를 당하지 않을 사람이 승차거부를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손님 앞에 택시가 멈춰섰을 때 그냥 문 열고 승차하면 되는데 굳이 목적지를 말하는 손님입니다. “가겠소, 말겠소?”하고 승객이 운전자에게 선택권을 준 것이죠. ‘정도(正道)’를 지키는 대부분의 동료 운전자들은 방향이 좋건 나쁘건 감수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승차하시라”는 시그널을 보냅니다. 하지만 어느 집단에나 약간씩은 섞여있는 썩은 정신을 가진 일부 운전자는 ‘손님이 나에게 선택권을 준 것이니 난 당연히 선택할 권리가 있지’하는 생각으로 승차거부를 하기도 합니다. 승객은 일단 택시가 멈춰서면 승차하신 후 목적지를 말씀하시는 습관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단, 서울에서 서울 이외의 지역(예를 들어 경기도)을 가시는 분들은 택시에 승차하시기 전에 미리 목적지를 말씀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유는 택시의 영업권이 도시별로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 택시는 경기도에 가지 않을 수 있는 선택권이 있습니다(단, 서울 택시의 경우 광명시, 인천공항은 승차거부 할 수 없음). 이는 모범택시(검정색 디럭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승객분들의 많은 오해 중 하나가 모범택시는 승차거부가 없고 대한민국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는 모범택시가 서울에만 존재했을 때 가능한 얘깁니다. 지금은 전국 6대 도시에서도 서울과 똑같이 모범택시가 운행되고 있습니다. 즉 모범택시도 일반택시와 똑같은 영업권을 갖고 운행을 하고 있는 것이죠. 따라서 모범택시도 일반택시처럼 경기도 방향 승객에 대해 합법적 승차거부가 가능합니다(그런데 모범택시는 현실적으로 승차거부를 할 만큼 손님이 많지 않죠).


 

승차거부를 당하는 사람 중에는 취객(醉客)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좀 더 연재가 진행된 후 아주 시리즈로 엮어서 따로 소개할 계획이 있으니 이번에는 생략하겠습니다.


 


그런가하면 가끔은 제가 승객으로부터 승차거부를 당할 때도 있습니다. 손님이 없을 때 빈 차로 마냥 돌아다니면 체력낭비+가스낭비가 심하기에 손님이 나올만한 곳에서 정차대기를 합니다(이 정차대기를 우리들 용어로 잠복, 줄대기, 놀이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정차대기 시간이 짧게는 3~5분, 길게는 20~40분이 되기도 합니다. 손님이 ‘징글러브하게’ 없는 추운 겨울, 월요일 새벽 2시쯤이었습니다. 창문을 꼭 닫아놓은 채 한 30여분을 손님이 나올만한 골목 입구에서 정차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성손님 한 분이 제 차 방향으로 오더니 “이 차 안가요?” 합니다. “안 가요?”하는 부정의 질문에 “예”라고 답하면 “안 간다”는 뜻이 될 것 같아, “아니오, 갑니다”하는 뜻으로 고개를 좌우로 저었더니, 손님이 다른 차로 휙 가버립니다. “아니, 이런!”


 

5분 정도를 더 기다렸습니다. 또 다른 손님이 와서 “이 차, 안 가는 차예요?”하고 또 묻습니다. ‘잉? 이걸 어찌 답하지’ 방금 전처럼 고개를 가로 저었다가 손님이 또 가버릴까봐 이번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랬는데도 손님이 다른 차로 휙 가버리네요. “또 이런!” 생각해보니 “안가는 차예요?”하고 물은 손님에게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했으니 다른 차로 가는게 당연한 일이죠.


 


그래서 그 날 이후로는 손님이 어떻게 묻든 상관없이 저의 답변은 한 가지 입니다. “예~ 갑니다, 타세요(+왼손으로 타라는 손짓).”


 

아 제발~ 누구에게 뭐 물어볼 때 부정으로 안 물었으면 합니다.


 


추신 : 승차거부 당하시면 그 자리에서 바로 120번 다산콜센터에 신고를 부탁드립니다. (이 부탁은 정도를 지키며 택시를 운전하는 동료 운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기도 합니다.)


 


◆ 이선주는 누구?


 

이선주(47)씨는 23년 경력의 택시기사다. 2008년 5월부터 차 안에 소형 카메라와 무선 인터넷 장비를 설치해 택시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동영상 사이트인 ‘아프리카(afreeca.com/eqtaxi)’에 ‘감성택시’란 이름으로 실시간 생방송하고 있다. 택시 뒷좌석에는 무선 인터넷이 가능한 카피씨(Car-PC)를 설치해 무료로 승객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조선일보를 비롯해 미 ABC 방송, YTN, SBS 등에 소개된 바 있다. 1999년에는 교통체계에 대한 정책제안 등의 공로로 정부가 선정한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다. 조선닷컴에서 ‘eqtaxi’라는 아이디로 활동하고 있다. ‘만만한게 택시운전이라고요?(1998)’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배꼽잡고(1999)’ 등 두 권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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