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항상 가장 어려울때 새 사업을 시작했다 | |||||||||||||||||||||||||||
事業報國 돈벌기보다 국민경제를 살찌우는데 주력 情報技術 정보가 기업의 생명ㆍ매출 10% R&D 투자 人材第一 의심가면 쓰지말고 한번 쓴 사람 의심말라 | |||||||||||||||||||||||||||
◆ 경영의 神들에게 배우는 기업가 정신 ◆ ① 이병철 삼성 창업주
2008년 가을 미국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빚어진 세계 금융위기 불똥은 실물경기로 번졌다. 세계 경제가 송두리째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위기 상황에서 삼성이 택한 것은 시나리오 경영.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세우지 않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삼성은 전 분야에서 원가 경쟁력을 높였다. 불필요한 낭비 요인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인 것이다. 이러한 삼성 경영방침은 이병철 선대 회장 가르침을 충실히 따른 것이다. 이 선대 회장은 평소에 "호황일 때 불황을, 불황일 때 호황을 준비하라"며 "불경기에도 돌파구는 있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어려운 시기에 기업의 참다운 실력이 드러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이 선대 회장 유산은 결국 빛을 발했다. 지난해 불황 속에서도 삼성전자 매출은 사상 최대인 136조원을 기록했다. ◆ 창조경영을 실천한 CEO = 1987년 타계한 이 선대 회장 경영이 20년이 지난 요즘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의 경영은 도전과 모험의 역사다. 이 선대 회장을 거론할 때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빈번히 등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한창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 선대 회장은 무에서 유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요즘 창조경영과 맥이 닿아 있다"며 "과거의 것을 개선하거나 혁신 차원을 뛰어넘었다"고 평가했다. 1938년 삼성상회 창업 이후 이 선대 회장은 1950년대부터 1~2년에 한 개씩 새로운 기업을 세웠다. 70대에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반도체 창업을 총지휘했다. 그는 평소에 `보보시도량(步步是道場)`이라는 말을 즐겨 썼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인생이라는 생각 아래 끊임없이 사업을 일으킨 것이다. 안철수 KAIST 석좌교수는 "당시에는 기업가 정신을 창업정신 또는 개척정신으로 볼 수 있다"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벤처정신이 진정하게 발휘됐던 시절"이라고 설명했다. ◆ 미래를 내다본 경영 = 이 선대 회장 경영은 10년 이상, 50년을 미리 내다봤다. 1982년 미국 보스턴대학 명예박사학위 수여식장에서 소렌슨 당시 총장은 "이 회장이 새로운 사업을 일으킨 것은 항상 그 사업의 시장성이 가장 낮은 수준에 있을 때였고 극히 혼란한 환경에 처해 있을 때였다"며 이 선대 회장의 남다른 선견지명을 높이 평가했다. 한국전쟁 상흔이 가시지 않은 1953년과 1954년에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을 연이어 창업한 것도 이 선대 회장이 시장을 미리 내다봤기 때문이다. 남들이 무모하다며 말리는 사업이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960년대 말 이 선대 회장이 전자업계에 뛰어들었을 때 그는 경기도 수원에 공장용지로 땅 45만평을 확보했다. 걸음마 단계인 회사에 45만평은 너무 넓은 땅이어서 주위에서는 부동산 투기를 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자 45만평 용지는 비좁아서 부천에 다시 공장용지를 확보해야만 했다. ◆ 정보와 기술을 중시한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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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선대 회장의 `도쿄 구상`은 널리 알려져 있다. 1960년부터 해마다 연말연초에 도쿄를 찾은 것이다. 여기서 그가 한 것은 정보 수집이었다. 도쿄에서 매스컴과 지인들을 만나 변화하는 세계를 읽고 정보를 얻으며 새로운 사업을 구상한 것이다. 전자와 반도체, 항공산업 진출 등은 모두 도쿄 구상이 낳은 산물이었다.
박오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신 정보가 기업의 생명이라는 것을 이 선대 회장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라며 "그는 한국보다 정보가 빠른 일본에서 최신 트렌드를 접한 뒤 이를 경영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고 평가했다. 1986년 6월 27일, 이 선대 회장은 초여름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경기도 용인에서 야심차게 추진한 삼성종합기술원을 짓는 첫 삽을 떴다. 이곳에서 이 선대 회장은 "기술은 국력이며 기술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기술 중시 경영을 강조하며 매출 10%까지 연구개발(R&D)을 위해 쓰라고 했다. 또 삼성 CEO는 모두 최고기술책임자(CTO)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전후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난 이공계 우수 인재가 삼성에서 빛을 발한 것은 이 선대 회장의 기술인 우대 정책 때문이었다. ◆ 돈보다 인재를 강조한 경영 = 이 선대 회장 경영 이념은 사업보국(事業報國)과 인재제일(人材第一), 합리추구(合理追求)로 요약된다. 이 가운데 이 선대 회장이 늘 강조했던 것이 사람이다. 물건은 줄 수 있어도 사람은 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는 생전에 서류 결재를 하지 않았다. 내용을 보지 않고는 결재할 수 없는 서류밖에 못 만드는 직원이라면 처음부터 쓰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의심이 가는 사람은 쓰지 말고, 한 번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疑人勿用 用人勿疑)`가 그의 경영철학이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본부장은 "사람을 믿지만 `신상필벌(信賞必罰)`을 확실하게 함으로써 합리성을 추구했다"고 분석했다. 이 선대 회장 인재경영은 오늘날 `삼성맨`이라는 신인류로 이어졌다. 인재에 대한 투자를 통해 삼성만의 차별된 DNA를 가진 도전적 인재를 창조한 것이다. ■ 이윤 일부 사회 환원해야… 삼성문화재단 세워 재산 3분의1 기증 고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 회장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회문화사업이다. 이 선대 회장은 평소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왔다. 기업의 이해집단인 고객 종업원 주주 정부 등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 같은 사회적 책임 일환으로 그는 육영 학술 문화 장학 등 사업을 추진했다. 이 선대 회장이 가장 즐겨 썼던 구절 가운데 하나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다. 이윤 추구를 기본 생리로 하는 기업가이면서도 그는 언제나 한 개인이 너무 많은 재산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선대 회장은 미국 강철왕 카네기의 `잉여재산이란 신성한 위탁물`이라는 말을 신조처럼 삼았다. 주인기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병철 회장은 나라가 없으면 삼성이 살아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늘 강조했다"며 "기업 이윤을 사회에 귀속시키는 것이 그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 선대 회장은 삼성문화재단을 통해 사회문화사업을 펼쳤다. 1965년 55세 생일을 맞아 제일모직과 제일제당(현 CJ) 동방생명(현 삼성생명) 신세계 등 개인 주식 10억원과 부산시 용호동 임야 10만여 평을 출연한 것이다. 당시로서는 기업가의 사회공헌사업이 낯선 시절이었다. 6년 후인 1971년에 이 선대 회장은 문화재단에 추가로 출연했다. 당시 이 선대 회장 재산은 180억원으로 평가받았다. 이것을 3등분해서 60억원을 문화재단 사업자금으로 넣은 것이다. 4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삼성문화재단은 현재 삼성미술관 리움과 호암미술관, 삼성어린이박물관 등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문화문고 발간도 삼성문화재단 주요 업적 가운데 하나다. 1971년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번역서를 시작으로 1979년까지 130종, 총 695만2000부를 발간하는 기록을 세웠다. 삼성문화문고는 도덕성과 관련된 동서고금 양서를 두루 선정해 시리즈로 발간했다. 전국 고등학교와 대학, 공공도서관에 무료로 기증하고 일반인에게는 염가로 판매했다. 이 선대 회장은 30대 때부터 미술품들을 수집했다. 초기에는 우리 문화에 대한 애착으로 시작한 그의 미술품 수집은 나중에 우리 문화를 지켜야겠다는 사명감으로 발전했다. 그는 개인 소장품 1167점을 문화재단에 기증해 1982년 호암미술관 개관으로 이어지도록 했다. 그가 기증한 미술품 중에는 `국보 중 국보급 명품`으로 꼽히는 국보 133호 `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자(靑磁辰砂蓮華文瓢形注子)`를 포함해 국보 7점과 보물 4점이 포함돼 있다. `이병철 경영대전`을 지은 홍하상 작가는 "국민이 호암(湖巖ㆍ이병철 회장 호)을 아는 것도 호암미술관 등 이병철 회장 사회문화사업이 꽃을 피웠기 때문"이라며 "국내에 처음으로 메세나라는 것을 실천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이승훈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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