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時에도 신사업에 전재산 투자 …`최초`즐긴 CEO | |||||||||||||||||||||||||||||||||||||
플라스틱ㆍ치약ㆍ라디오ㆍ전화기ㆍTV…도전정신으로 시장 개척 | |||||||||||||||||||||||||||||||||||||
◆경영의 神들에게 배우는 기업가 정신 / ③ 구인회 LG 창업주◆
그로부터 58년이 흐른 2009년 말.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계열사 최고경영진과 신년 전략을 세우며 "경영환경의 어려움이 예상돼도 도전적인 목표를 세우고 근시안적인 목표를 세우는 형태를 경계하자"고 주문한다. 1969년 타계한 구인회 LG 창업회장의 경영신념이 60여 년이 흐른 후 손자인 구본무 회장에게 그대로 투영되고 있는 셈이다. LG그룹을 창업한 구 회장의 이름 뒤에는 수많은 `최초`가 따라다닌다. △한국 최초 플라스틱 제품 생산 △한국 최초 치약 생산 △한국 최초 전자회사 설립 △한국 최초 라디오ㆍ선풍기ㆍ전화기ㆍTVㆍ세탁기ㆍ냉장고 생산 △한국 최초 합성세제 생산 △한국 최초 공개 채용 △한국 최초 외자합작기업 설립 △한국 최초 기업공개 등이 모두 그의 작품들이다. `최초`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를 즐겨 기업을 성장시키는 기회로 삼았던 도전적 경영자가 바로 구인회 회장이다. 2000년대 인기를 끌었던 블루오션 경영을 이미 60여 년 전부터 실천하며 도전ㆍ모험을 즐기는 기업가정신으로 가득 찼던 사람이 그다. 경제 위기를 핑계로 투자와 신시장 개척을 주저하는 기업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대목이다. ◆ `손쉬운` 경영 사절
하지만 이때 구 회장은 새로운 칼을 빼든다. 바로 전자산업이다. 여기저기에서 신사업에 대한 정보를 모으던 중 선진국 전자산업에 대한 얘기를 듣고 도전을 결정한 것이다. `화학산업만 해도 잘나가는데 왜 잘 모르는 사업에 뛰어드느냐`, `우리가 전자산업을 할 기술과 자본이 어디 있느냐` 등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구 회장은 "지금 머뭇거리면 앞으로 영원히 선두자리를 차지하기 힘들기 때문에 개척자 정신을 보여줄 때"라며 반대 목소리를 잠재우고 전자산업에 뛰어든다. 1년이 넘는 자료 수집 끝에 그는 한국 최초의 전자회사 금성사(현 LG전자)를 만든다. 이후 한국에서 처음으로 라디오ㆍ선풍기ㆍ전화기ㆍ냉장고ㆍTV 등을 줄줄이 만들어낸다. 이후 전자는 회사의 성장동력이 됐을 뿐 아니라 한국 전자산업을 일으키는 초석이 됐다. ◆ "한 번 믿으면 다 맡긴다" = 구 회장이 도전ㆍ개척 정신으로 만들어낸 사업 분야는 얼마든지 더 있다. 1965년 전자ㆍ통신ㆍ화학 등에서 이미 큰 성공을 거뒀지만 그는 또다시 신성장동력을 찾아낸다. 다른 기업들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던 정유사업이 그것이다. 석탄 중심의 에너지 구조가 석유 위주로 전환하면 성장성이 클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2년 이상을 준비한 끝에 구인회 회장은 정부 허가를 얻어 국내 최초 민간 정유사인 호남석유(현 GS칼텍스)를 설립했다. 특히 호남석유는 한국 최초로 외국자본과 합작으로 만들어진 회사다. 남들이 생각지 못한 것을 시도하는 `최초`의 생각은 인재육성에서도 나타난다. 구 회장은 창업 초기부터 사람을 중시하며 `인화(人和)`를 강조했다. 또 `기업은 결국 사람이 경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재를 확보하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인재 확보를 위해 고민하던 1957년, 한국 기업 중 최초로 공개채용을 실시했다. 혈연ㆍ지연ㆍ학연에 따른 특채가 주류였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인화`와 사람을 중시하는 경영은 `한 번 믿으면 다 맡긴다`는 그의 철학에도 잘 나타난다. 이런 철학은 LG그룹에서 계열사 자율경영으로 유지되고 있다. 구 회장은 그룹의 주요 결정권을 계열사에 넘기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지면 사람은 최선을 다하도록 돼 있다. 모든 것을 믿고 맡겨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 연구개발(R&D)을 우선하는 경영 = 경영 측면에서도 구 회장은 `최초`와 `도전`을 즐겼다. 그는 `기업은 개인 소유`라는 인식이 있던 1969년 락희화학에 대해 8억원 규모 신주를 발행하며 국내 기업 첫 기업공개를 단행하기도 했다. 구 회장은 현장을 중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957년 공채로 대졸 신입사원을 뽑았을 때 주위의 만류를 떨쳐내고 현장에서부터 교육을 시켰다. `기업을 하는 데 가장 어렵고 중요한 것이 현장`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구 회장은 R&D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R&D라는 개념이 생소하던 1950년대 공장을 세우기 전에 연구소부터 설립했다. R&D에서도 개척정신을 발휘했고 이는 다른 기업들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김규식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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