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장치는 기본, 편의장치는 고객에 선택권 줘야
"운전자의 생명 달린 문제라는 인식 필요"
연합뉴스 | 입력 2009.11.19 08:03 | 수정 2009.11.19 09:22
(서울=연합뉴스) 안승섭 기자 = "수출보다 더 잘 만들어야 함에도 옵션 떨어지고 가격만 비싸면 그게 매국 아닌가"
최근 `도요타 브랜드 4개 차종 계약판매 4천대 돌파'라는 제목으로 포털 사이트에 실린 기사에 한 누리꾼이 붙인 댓글이다.
충격적인 것은 이 기사에 실린 댓글의 90% 이상이 국내 자동차업체들을 비판하는 글이라는 점이다.
"국민을 계속 봉으로 생각하면 망한다", "이제 더 이상 애국심으로 호소해도 안 되는 거야" 등 다소 감정적인 어조까지 서린 댓글들은 이제 소비자들의 인식에 무언가 변화가 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이 그들의 변화를 불러온 것일까.
◇ 글로벌화한 소비자 의식
미국에 나가 있는 우리나라 유학생 수는 7만5천여 명에 달한다. 인도,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다. 여기에 단기 어학연수나 기업 주재원 등을 합치면 상당기간의 미국 생활을 경험한 사람은 수십만 명에 달한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살면서 자동차는 필수품이기 때문에 이들은 자연스레 국산차와 외국 제품을 비교해 보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출차와 내수용 차량의 차이도 알게 될 수 밖에 없다.
1년 간 미국 생활을 한 백모(46)씨는 "미국에서 외국 차량을 타본 것은 하나의 새로운 경험이었다. 국산차의 허와 실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소비자의 변화를 세계화시키는 또 하나의 요인은 바로 인터넷이다.
예전에는 미국 현지에서 살지 않는 한 미국 내에서 판매되는 차량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마우스 몇 번만 클릭하면 미국 내의 거의 모든 차종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현대차의 미국법인 사이트(www.hyundaiusa.com)에 가면 현대차가 미국에서 파는 모든 현대차의 기본 사양과 옵션, 가격 등을 상세하게 알 수 있다.
결국, 수출용보다 상대적으로 소홀한 내수용 차량의 안전장치 등의 문제를 국내 소비자들도 자세히 알게 됐고, 이러한 차별 등에 감정적인 분노까지 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소비자들의 의식은 변하고 있지만, 국내 자동차업체들은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자동차 업체들은 "내수용 차량에서 안전장치를 줄인 것은 소비자의 가격 부담을 고려해서다. 소비자 선택권을 존중해 옵션으로 장착할 수 있게 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의 가격 부담과 선택권'을 너무도 존중하는 국내업체들의 마케팅 정책 덕에 우리나라의 자동차 안전장치 수준은 너무도 뒤떨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 안전장치 장착률은 `제자리걸음'
2004년 8월 현대모비스는 국내 최초로 국산화에 성공한 차량자세제어장치(ESC)를 새로 출시되는 `NF 쏘나타'에 장착한다고 발표했다.
ESC는 차가 미끄러지거나 전복될 위험이 있을 때 이를 자동으로 막아주는 첨단 안전장치로, 자동차 안전 측면에서는 에어백 다음으로 중요한 장치로 여겨진다.
당시 현대모비스는 "도요타와 크라이슬러의 실험 결과 ESC가 장착되면 심각한 교통사고 위험이 50%나 줄어드는 것으로 입증됐다"며 "2005년 말이면 국산차의 ESP 보급률이 15%에 이를 것이다"고 예상했다.
그렇다면, 현재 국산차의 ESC 장착률은 얼마나 될까.
현대차가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판매한 `아반떼'의 ESC 장착률은 고작 1.9%에 지나지 않는다. GM대우가 지난달 판매한 `토스카' 중 ESC가 달린 차도 4%에 불과하다.
심각한 교통사고 위험을 절반이나 줄여준다는 ESC 장착률이 왜 이렇게 낮은 걸까. 답은 소비자들이 선택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모르기 때문이다'고 할 수 있다.
회사원 윤태림(35) 씨는 "ESC나 커튼 에어백 같은 안전장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나뿐 아니라 주위 사람 대부분 마찬가지인 것으로 안다. 알았다면 달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구모(32)씨는 "차를 사러 갈 때 안전장치에 대해서는 설명도 하지 않는데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모르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 안전장치 기본장착으로 운전자 생명 지켜야
미국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는 15개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올해 9월 이후 판매되는 모든 승용차와 경트럭에 사이드 에어백을 자발적으로 장착하기로 했다.
갈수록 강화되는 자동차 안전장치 규제에 선제로 대응하고 자동차 운전자의 생명 보호에 앞장선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노력이다.
미국에서 ESC 장착은 지난해부터 2011년까지 단계적으로 의무화되고 유럽에서는 2012년 승용차에 의무화되지만 이미 이들 국가에서 파는 차량 대부분에는 ESC가 달렸다. 규제를 앞선 자동차업체들의 노력이다.
우리나라에서도 ESC 의무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지만, 시행 시기나 적용 대상 등이 어떻게 결론날지는 미지수다.
만약 세계 5위의 자동차 기업인 현대기아차나 미국 GM이 대주주인 GM대우가 진정한 세계적 기업으로서의 명성을 높이려고 한다면 미국에서처럼 규제에 앞선 선도적인 모습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안전장치가 의무화되기 수년 전인 2005년부터 미국 수출 쏘나타에 6개의 에어백과 ESC를 단 것처럼 내수용 차량에도 안전장치를 기본 장착해 고객의 안전 도모에 앞장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소비자 부담을 고려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미 국내 소비자들의 안전의식은 그러한 부담을 질 정도로 높아진 상태이다.
회사원 김정관(38) 씨는 "옵션이라면 쓸데없는 비용 부담으로 생각하겠지만, 기본 장착된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가족의 안전을 생각해서라도 그 정도 비용은 감당할 용의가 있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고 말했다.
교통과학연구원의 강동수 교통안전팀장은 "안전장치는 똑같은 사고라도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중요한 장치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경향이 있다. 안전장치의 기본장착은 이러한 의미에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ssah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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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것은 이 기사에 실린 댓글의 90% 이상이 국내 자동차업체들을 비판하는 글이라는 점이다.
"국민을 계속 봉으로 생각하면 망한다", "이제 더 이상 애국심으로 호소해도 안 되는 거야" 등 다소 감정적인 어조까지 서린 댓글들은 이제 소비자들의 인식에 무언가 변화가 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이 그들의 변화를 불러온 것일까.
◇ 글로벌화한 소비자 의식
미국에 나가 있는 우리나라 유학생 수는 7만5천여 명에 달한다. 인도,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다. 여기에 단기 어학연수나 기업 주재원 등을 합치면 상당기간의 미국 생활을 경험한 사람은 수십만 명에 달한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살면서 자동차는 필수품이기 때문에 이들은 자연스레 국산차와 외국 제품을 비교해 보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출차와 내수용 차량의 차이도 알게 될 수 밖에 없다.
1년 간 미국 생활을 한 백모(46)씨는 "미국에서 외국 차량을 타본 것은 하나의 새로운 경험이었다. 국산차의 허와 실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소비자의 변화를 세계화시키는 또 하나의 요인은 바로 인터넷이다.
예전에는 미국 현지에서 살지 않는 한 미국 내에서 판매되는 차량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마우스 몇 번만 클릭하면 미국 내의 거의 모든 차종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현대차의 미국법인 사이트(www.hyundaiusa.com)에 가면 현대차가 미국에서 파는 모든 현대차의 기본 사양과 옵션, 가격 등을 상세하게 알 수 있다.
결국, 수출용보다 상대적으로 소홀한 내수용 차량의 안전장치 등의 문제를 국내 소비자들도 자세히 알게 됐고, 이러한 차별 등에 감정적인 분노까지 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소비자들의 의식은 변하고 있지만, 국내 자동차업체들은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자동차 업체들은 "내수용 차량에서 안전장치를 줄인 것은 소비자의 가격 부담을 고려해서다. 소비자 선택권을 존중해 옵션으로 장착할 수 있게 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의 가격 부담과 선택권'을 너무도 존중하는 국내업체들의 마케팅 정책 덕에 우리나라의 자동차 안전장치 수준은 너무도 뒤떨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 안전장치 장착률은 `제자리걸음'
2004년 8월 현대모비스는 국내 최초로 국산화에 성공한 차량자세제어장치(ESC)를 새로 출시되는 `NF 쏘나타'에 장착한다고 발표했다.
ESC는 차가 미끄러지거나 전복될 위험이 있을 때 이를 자동으로 막아주는 첨단 안전장치로, 자동차 안전 측면에서는 에어백 다음으로 중요한 장치로 여겨진다.
당시 현대모비스는 "도요타와 크라이슬러의 실험 결과 ESC가 장착되면 심각한 교통사고 위험이 50%나 줄어드는 것으로 입증됐다"며 "2005년 말이면 국산차의 ESP 보급률이 15%에 이를 것이다"고 예상했다.
그렇다면, 현재 국산차의 ESC 장착률은 얼마나 될까.
현대차가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판매한 `아반떼'의 ESC 장착률은 고작 1.9%에 지나지 않는다. GM대우가 지난달 판매한 `토스카' 중 ESC가 달린 차도 4%에 불과하다.
심각한 교통사고 위험을 절반이나 줄여준다는 ESC 장착률이 왜 이렇게 낮은 걸까. 답은 소비자들이 선택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모르기 때문이다'고 할 수 있다.
회사원 윤태림(35) 씨는 "ESC나 커튼 에어백 같은 안전장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나뿐 아니라 주위 사람 대부분 마찬가지인 것으로 안다. 알았다면 달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구모(32)씨는 "차를 사러 갈 때 안전장치에 대해서는 설명도 하지 않는데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모르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 안전장치 기본장착으로 운전자 생명 지켜야
미국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는 15개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올해 9월 이후 판매되는 모든 승용차와 경트럭에 사이드 에어백을 자발적으로 장착하기로 했다.
갈수록 강화되는 자동차 안전장치 규제에 선제로 대응하고 자동차 운전자의 생명 보호에 앞장선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노력이다.
미국에서 ESC 장착은 지난해부터 2011년까지 단계적으로 의무화되고 유럽에서는 2012년 승용차에 의무화되지만 이미 이들 국가에서 파는 차량 대부분에는 ESC가 달렸다. 규제를 앞선 자동차업체들의 노력이다.
우리나라에서도 ESC 의무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지만, 시행 시기나 적용 대상 등이 어떻게 결론날지는 미지수다.
만약 세계 5위의 자동차 기업인 현대기아차나 미국 GM이 대주주인 GM대우가 진정한 세계적 기업으로서의 명성을 높이려고 한다면 미국에서처럼 규제에 앞선 선도적인 모습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안전장치가 의무화되기 수년 전인 2005년부터 미국 수출 쏘나타에 6개의 에어백과 ESC를 단 것처럼 내수용 차량에도 안전장치를 기본 장착해 고객의 안전 도모에 앞장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소비자 부담을 고려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미 국내 소비자들의 안전의식은 그러한 부담을 질 정도로 높아진 상태이다.
회사원 김정관(38) 씨는 "옵션이라면 쓸데없는 비용 부담으로 생각하겠지만, 기본 장착된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가족의 안전을 생각해서라도 그 정도 비용은 감당할 용의가 있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고 말했다.
교통과학연구원의 강동수 교통안전팀장은 "안전장치는 똑같은 사고라도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중요한 장치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경향이 있다. 안전장치의 기본장착은 이러한 의미에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ssah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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