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 디자인센터 에 있는 영상 품평장에 신형 에쿠스 디자인 담당자들이 모였다. 영상 품평장은 대형 스크린에 실제 차량 크기의 영상을 띄워 내·외장을 보고 평가할 수 있는 시설로, 배경에 보이는 차들은 모두 에쿠스 개발 초기의 디자인 시안이다. 왼쪽부터 이형수·박준호 연구원, 백승대 팀장, 유영복·남택성 연구원. 남양연구소(화성)=[안성식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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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디자인 세계 최고 수준”=이 연구소 박준호(37) 선임연구원은 현대자동차의 디자인이 세계 최고라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최근에 있었던 일화를 소개해 줬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이탈리아의 유명 전문업체와 우리 팀이 똑같은 컨셉트카를 디자인한 뒤 외부 전문가들의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외부 전문가 전원이 현대자동차의 디자인이 낫다고 평가했다.”
백 팀장도 “내가 입사할 당시인 1989년만 해도 자동차 기술과 디자인 능력이 다른 업체에 많이 뒤졌었지만 지금은 거의 따라잡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현대·기아차의 디자인 경쟁력이 최근 비약적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경영진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특히 정몽구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은 “향후 자동차는 디자인 싸움”이라며 양적·질적 측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현재 남양연구소 디자인센터에 디자이너만 460여 명(현대차 250명, 기아차 210명 등)이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디자인센터(80명) 등 해외까지 합치면 규모 면에서 세계 3~4위권이다. 실제 크기의 고해상도 영상으로 차량 내·외부를 볼 수 있는 최첨단 영상 품평장, 실제 차량 8대를 수용하는 실차 품평장 등이 있다. 나무·합성수지로 차량 모델(목업)을 깎는 기계, 다양한 조명을 비춰 차량 곡선의 마무리를 살펴보는 시설 등 디자인에 필요한 모든 시설이 수준급이라는 평가다.
◆‘럭셔리 감각’부터 익혀=에쿠스 디자인팀은 개발 초기 한동안 ‘좋은 시절’을 보냈다. 회사의 지원으로 미국의 베벌리힐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등 명소를 둘러보고 저녁에는 최고급 호텔에서 묵었다.
국내에서는 디자인이 멋지다는 청담동의 고급 와인바를 순례하기도 했다. 에쿠스의 고객이 접할 만한 ‘럭셔리한 감각’을 직접 느끼기 위해서였다. 겉모습뿐 아니라 좌석이나 내장재의 재질·느낌과 서비스를 직접 체험해 보라는 취지였다.
내장 소재와 색상을 담당하는 컬러팀 남택성(36) 연구원은 “럭셔리 감각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얻은 한 가지 결론은 ‘진짜’ 소재의 중요성이었다”며 “에쿠스는 가짜(페이크) 소재 없이 모두 진품 가죽과 나무를 썼다”고 말했다.
물론 디자인팀의 이 같은 좋은 시절은 잠깐이었다. 이후 그들의 일상은 거의 매일 밤샘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백 팀장은 “디자인팀은 출근 시간은 있지만 퇴근 시간은 없다”며 “수십 명의 디자이너가 매일 20~30여 장씩 그리고 버린 초기 디자인이 10만 장은 훨씬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2004년 7월 에쿠스를 개발하기 시작해 양산 준비까지 거의 5년이 걸렸다. 무수한 수정과 재검토를 거치느라 다른 승용차보다 디자인 개발 기간이 두 배 이상 걸렸다고 한다.
고급 소재와 첨단 기능을 디자인과 융합시키는 것도 과제였다. 유영복(38) 선임연구원은 “디자인은 2~3년 뒤의 유행을 내다보지만 기술 부문 연구원들은 당장 구현 가능하고 검증된 것만을 앞세우기 때문에 서로 의견 충돌이 다반사였다”며 “까다로운 디자인팀의 요구에 맞춰 준 기술 부문 연구원들에게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독수리의 눈’을 찾다=국내 최고급 자동차인 에쿠스의 모티브는 ‘독수리 눈’이다. 헤드램프는 독수리 눈을, 라디에이터 그릴은 독수리 날개를, 리어 램프의 발광다이오드(LED) 디자인은 독수리 부리를 형상화했다. 진취적이면서도 중후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백 팀장은 “처음부터 세계 최고급 차와 경쟁할 수 있는 차를 만들라는 요구를 회사 고위급 인사로부터 받았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디자인의 일관성이 떨어지고 자신만의 색깔이 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백 팀장은 한국 소비자의 취향과도 관련이 있다는 설명이다. BMW나 벤츠는 소형부터 대형 세단까지 모두 같은 ‘얼굴’을 가져도 당연시하지만 국내 소비자들은 소형차와 대형차가 비슷해 보이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백 팀장은 “국내 고객도 일관성이 있는 디자인을 찾기 시작했다”며 “올가을에 나올 ‘YF쏘나타’의 경우 현대차의 아이덴티티를 이끌어 갈 상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화성=이승녕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